절정 - 시대를 품은 시인, 이육사

난 보고도 못 본 척할 수 없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슬프면서도 안 슬픈 척
화났으면서도 화가 나지 않은 척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은 척
할 수 없단 말이오
나는..
시인이오

어제 다시보기를 통해 혼자서 추석특집극으로 본 광복절특집극 절정 때문에 오늘 종일 기분이 우울하다. 마치 아직도 일제시대이기라도 한 양.. 어릴 적엔 몰랐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만 일찍 태어났으면 일제시대에 태어난 게 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아직도 칠십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대, 고작 육칠십년 전에 지금 사람들과 다르면 얼마나 달랐다고 십여차례나 계속됐다는 투옥과 고문을 대체 어떻게 견뎠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모진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죽을 때까지 되풀이한 이육사라는 사람이 실은 그저 밝은 눈을 가진 까닭에 보이는 것들을 못 본 척하지 못했을 뿐 한없이 여린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슬픈데 슬프지 않은 척 못하는 '시인'이었다는 것을 드라마로 만들어 보여 주니 이제야 겨우 실감하는. 힘든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마치 이육사의 시에 나오는 초인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했던 건 아닌지.
멋내기를 좋아하면서도 섬세한 시인의 모습과 뜻밖에도 너무 잘 어울렸던 김동완도 좋았지만 아내역의 배우도 담백하면서도 너무 귀여웠다. 보고 나서 바로 검색해 보니 서현진이라는 배우. 안동 사투리를 원래도 좀 좋아하는데 어찌나 사랑스럽게 연기했던지.
암튼 생각보다 드라마의 후유증이 커서 한동안은 우울할 것 같다.

덧. 역시나 거부할 수 없는 '하오'체의 매력. 아예 갓 쓴 선비들이 '하오'체로 말하는 것도 듣기 좋지만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하오'체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요즘에도 이 말투는 좀 다시 살려 썼으면. 그럼 이 나라 사람들도 왠지 조금은 더 우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덧글

  • 우사미 2011/09/14 22:26 # 답글

    정말 김동완이 이렇게 잘할줄이야...윤세주역 이승효도 좋고 캐스팅이 아주 잘되었어요
  • 편식 2011/09/15 01:09 #

    네 김동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연기나 목소리도 그렇고 눈빛이 참 좋더라구요. 선덕여왕을 안 봐서 이승효도 여기서 처음 봤는데 정말 캐스팅을 다 참 잘한 것 같아요 ^^
  • minci 2011/09/15 00:38 # 답글

    일점사보다 강하다는 이육사군요.
    언제 시간내서('시간날때'가 아냐!)봐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ㅅ^
  • 편식 2011/09/15 01:14 #

    게임을 안해서 일점사 검색해 봤네요ㅋ
    돈을 많이 들인 드라마도 아니고 2시간 안에 많은 얘기를 담으려다 보니 허술한 부분들도 있지만 저도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시간 내서라도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 2011/09/16 16:2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편식 2011/09/17 15:53 #

    광복절날 보셨었군요~ 저도 뒤늦게라도 보게 돼서 정말 좋았다는요 ^^ 말씀대로 작가가 많이 준비하고 썼는지 대사들도 참 좋더라구요. 한옥집과 한복의 소박한 모습들도 너무 이뻤구.. 여러가지로 좋은 면이 참 많았던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
    우와 애 아빠로 나오는 거였어요? 저는 몰랐었는데 왠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고 더 기대됩니다ㅋ ㅇㅇ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 분홍복면 2011/09/19 22:48 # 답글

    이런 드라마가 있었군요..워낙 티비와 담을 쌓고 사는지라...김동완이 누군지도 잘,.ㅠㅠ 근데 저 스틸사진들을 보니 왠지 아련하고 좋은 느낌이 드네요. 일제시대에 대한 편식님 감상도 와닿고....저는 예전에 윤동주를 참 좋아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젊은 나이에 남의 땅에서 투옥되고 생체실험 대상까지 되다가 결국 죽었다는게 정말 너무 한거 아니냐 싶을 때가 많았어요. 하오체 쓰던 시절이 더 우아했다는데 저도 동의해요. 저 동그란 안경도 좋네요.
  • 편식 2011/09/21 21:36 #

    네 김동완은 신화 멤버구요ㅋ 저도 그렇다는 것만 알지 사실 신화 노래하는 건 한번도 본 적도 없다는요ㅋ
    저도 원래는 윤동주를 훨씬 좋아했고 이육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윤동주 못지 않게 안스럽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동그란 안경이나 스틸 느낌들도 참 좋죠? 실제로 봐도 영상도 참 편안하면서도 예뻤답니다. 분홍복면님과 저의 공통분모 중 외국어 페티쉬 같은 거 생각해 보면 하오체 분홍복면님도 당연히 좋아하실 것 같아요 ^^
  • 분홍복면 2011/09/19 23:04 # 답글

    이육사라면 왠지 강하기만 한 사람 같은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시인인데 당연히 섬세한 사람이었겠네요..정말 섬세한 사람이기 때문에 강할 수 있는건지 ...이거 저도 봐야겠슴다. 그러고보니 윤동주의 이야기를 드라마나 여와로 만든건 본적이 없네요 별 극적인 사건이 없어서 그런지...그래도 누가 그 역을 잘할까 상상해보니 잠시 혼자 즐겁네요. 요즘 별달리 즐거운 일도 없고 피곤했는데 간만에 좋은 자극 받고 갑니다 감사.. 갑자기 윤동주 시를 다시 꺼내 읽고싶네요. 이육사도 교과서에 있는거 말고 더 읽어봐야겠어요.
  • 편식 2011/09/21 21:43 #

    제말이요.. 저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막연히 강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시인인데 당연히 섬세한 사람이었겠더라구요. 요즘 별로 즐거운 일 없으셨으면 꼭 보세요~ 저도 요즘 별로 즐거운 일도 재밌는 일도 없었는데 의외로 너무 잘 봤거든요 ^^
    윤동주에 대한 드라마는 아주아주 어렸을 때 특집극 같은 걸로 본 적이 있는데 요즘은 활동 안하는 배우 얼굴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이름은 모르겠는.. 암튼 어렸을 때 봤을 때 그닥 딱 와닿는 캐스팅은 아니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 재밌게 봤던 것 같긴 해요. 근데 분홍복면님 말씀 듣고 나니 정말 요즘에 윤동주 이야기로 영화나 드라마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 누가 하면 좋을까 상상하니 갑자기 즐거워집니다ㅋ
  • 편식 2011/09/21 22:01 #

    갑자기 궁금해져서 검색해 보니 옛날에 윤동주 시인으로 나왔던 분은 태민영이라는 배우셨다는.. 활동을 접었나 했었는데 알고 보니 2000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네요 쩝;;
  • 분홍복면 2011/09/23 02:00 #

    편식님도 윤동주를 좋아하셨다니 공통점이 또 있네요! 저는 지금도 우리나라 시인 중 제일 좋아하는 시인으로 윤동주를 꼽아요..전기와 비평문도 찾아읽고, 초기 시도 다 찾아읽고 했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윤동주 드라마도 있었군요! 그건 몰랐는데...태민영이라면, 꽤 유명하던 분이잖아요 그러게요 딱히 어울리는 거 같진 않지만, 어딘지 비슷한거 같기도 라고..근데 돌아가셨단건 몰랐어요..
    근데 원빈을 윤동주역으로 캐스팅하면 너무 심할려나요? ㅋㅋㅋㅋㅋㅋ 옛날옷입고 하오체 쓰는 빈이 보고싶은데...딴소리지만 강제규 감독이 만든다는 영화 마이웨이에 장동건이 캐스팅됐잖아요. 근데 오다기리 조랑 나란히 놓고봤을때 그림이 되는건 원빈인데! 싶었답니다ㅣ ㅋㅋ
  • 편식 2011/09/23 08:09 #

    네 사실 제가 국문과를 가게 됐었던 이유 중에 윤동주 시인, 그리고 윤동주 시인과 어딘가 닮았던 고등학교때 국어 선생님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ㅋㅋ 와 근데 분홍복면님께서는 저보다도 훨씬 더 많이 좋아하셨었나 봅니다. 분홍복면님도 태민영씨 아시는군요! 주연을 많이 했던 건 아니라 그리 유명한 분 아닌 줄 알았는데 그런데 돌아가신 줄은 저도 몰랐다는...
    원빈의 윤동주 참신한데요! ㅋㅋㅋ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하구요 ㅋ 오다기리 조랑 그림이 되는 건 원빈이란 말씀 백번공감이요!!ㅋㅋ
  • 분홍복면 2011/09/25 12:56 #

    와 그렇다면 편식님께 윤동주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시인인거잖아요! 그리고 윤동주 닮았던 국어 선생님이라니 대박인데요. 걸오닮은 대학선배이래로....부럽습니다 ^^;;;; 저는 왜 그런 선생님, 그런 선배를 만나지 못했는지 에구.,^^ 오다기리 조와 원빈, 그쵸? 감독님 센스가 살짝 부족하신듯..ㅋㅋ
  • 편식 2011/09/25 21:13 #

    그렇다고 제가 윤동주를 너무 좋아해서 국문과를 간 건 아니구요 그냥 국문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정도였던.. ^^; 국어선생님도 걸오같은 선배도 어차피 국문과에서 볼 수 있는 성향의 사람들이니까요ㅋ 대신 분홍복면님은 제가 볼 수 없었던 예술가 타입의 멋진 사람들을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
  • 2011/09/25 22: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편식 2011/09/26 18:24 #

    하하 로망까지 생기시면 곤란하구요 가끔 어쩌다가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거지 대부분은 거리가 멀답니다 ㅋㅋ 하긴 그러고 보면 저도 그냥 개인적으로 아는 미술 하는 사람들(고등학교 친구나 어찌어찌 알게 된 사람들 등등)이 적지만 있는데 여자들은 다 괜찮았던 것 같아요 ^^
    절정 1편 보셨군요! 저도 신화 멤버인 것만 알았지 관심은 없었는데 정말 꽤 잘 어울리죠? 아내역 배우도 너무 괜찮았구요. 그리고 저도 시골집의 단아한 풍경이나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린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구요. 강가를 비롯한 마을 풍경도 아름답구요.
  • 분홍복면 2011/09/27 22:26 # 답글

    편식님 2편까지 다 봤어요....중간에 살짝 지루해지나 싶었는데 이육사가 다시 부인 떠날때부터 몰입되더니.. 세주 죽을때 눈물이 났어요. 마지막에 순사가 사망소식 전하는 것도 그렇고...시 낭송하는 것도, 환상장면도...다 너무 슬프고아름다웠어요. 특히 그 강가의 백마.. 이육사 시를 좋아한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여기선 시도 좋고.... 김동완 눈빛이 참 맑네요, 그냥 뻔한 영웅이 아니라 어딘가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거 같은데 또 섬세하고 자상한 분위기라 더 좋았던 거 같아요. 부인 역의 배우도 정말 괜찮았던 거 같고...좀 아쉬웠던 건 마지막에 부인 얼굴 한번 더 보여줬으면 싶은..하긴 그러면 너무 슬펐을려나요. 암튼 편식님 덕분에 좋은 드라마 잘 봤습니다. 오늘 최종병기 활도 봤는데, 어딘가 두 작품이 오버랩되는게(자인이한테서 이육사 부인이 오버랩되고..) 저렇게 힘들게 살았던게 늘 우리 모습이었나 싶으니까 더 슬프고, 또 문득 까닭없이 억울한 생각도 들고 그랬어요.
  • 편식 2011/09/27 22:41 #

    다 보셨군요! 네 저도 지루하다기보다는 중간중간 약간씩 어설픈 느낌이 드는 데는 있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좋은 점이 훨씬 많았던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저도 말씀하신 윤세주 죽는 장면, 사망소식 전하는 장면이나 나레이션으로 시가 깔리는 장면들, 환상 장면 다 좋았어요. 강가의 백마를 비롯해 환상 장면들은 특히 정말 생각도 잘한 것 같고 찍기도 잘 찍은 것 같구요. 그리고 저는 마지막으로 베이징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이육사가 이게 뭐꼬 하면서 울고 서로 보듬어 주는 장면이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저도 이육사 시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정말 시 자체가 다시 보였구요. 김동완 눈빛 정말 맑죠? 저도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나 깜짝 놀랐다는.. 마지막에 부인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마지막에 이육사가 뭐라고 했는지 들려 주길 바랬었는데 저도 그건 살짝 아쉬웠구요. 하긴 근데 분홍복면님 말씀처럼 그러면 정말 너무 슬펐을까요.
    최종병기 활도 보셨군요~ 저도 보고 나서 억울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암튼 참 착잡하더라구요. 후유증은 절정이 좀 훨씬 더 크긴 했지만요.. 본 지 좀 됐는데도 절정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 편식 2011/09/27 22:44 #

    참 그리고 저도 여기서의 이육사 캐릭터가 참 맘에 들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면이나 강직한 면도 있는데 섬세하고 자상한 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면도 있고 그런.. 작가도 캐릭터를 잘 잡은 것 같고 김동완도 표현을 참 잘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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