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2003)

(스포라면 스포 있음)

지난주에 감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해서 할 일을 조금은 하고 모레쯤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볼일 있어 나간 김에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집에 오는 길에 봄.
베르톨루치가 기본적으로 유럽 사람이라 그런 건지 옛날 사람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2003년 영화인데 요즘 영화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정서도 없이 스타일만 과잉인 미국 하이틴 영화나 만들면 어울릴 그저그런 감독이 만들었다면 너무 스타일리쉬하고 에로틱해지기 쉬운 소재라 감정이입이 오히려 방해 받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마치 이 영화 후에 세 배우가 함께 찍었다는 아르마니 광고처럼), 모든 것이 투박하고 자연스러워서 무척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끝나려나 사실 내내 조마조마했는데, 전투경찰들이 슬로우모션으로 화면 앞으로 달려들어 모두 카메라 뒤로 빠지고 난 뒤의 텅 빈 거리 위로 갑자기(영화 내내 흐르던 것은 주로 재니스 조플린이나 지미 헨드릭스같은 그 시대 미국 블루스락이다가 갑자기. beyond the sea의 원곡 la mer 같은 곡도 나오긴 했지만) 에디뜨 삐아프의 '후회하지 않아'가 흐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이렇게 멋진 직설화법이라니, 너무 좋아서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유아기적이었다고 해도 소아병적이었다고 해도, 변태였다고 해도, 몽상가였다고 해도 괜찮아. 우린 후회하지 않아.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아 갑자기 힘이 펄펄 나서 외투 모자를 뒤집어쓰고 씩씩한 걸음으로 집을 지나쳐 반대편에 있는 마트에 가서 금요일 전까지 사흘동안 먹을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돌아왔다. 만약 영화를 보고 우울해졌다면 또 우울한 대로 사흘동안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하고 똑같이 장을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 온 것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으며 '너무 좋다'를 두번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영화가 너무 좋다기보다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러고도 뭔가 모자라 '아 좋다' 한번 더 중얼거리고는 포스팅 하는 중.




에바 그린도 매력적이고(머리카락에 불 붙는 그 멋진 장면이 대본에 있던 게 아니라 실제상황이었다니!) 마이클 피트의 어리버리한 미국인 연기가 몹시 귀여웠다. 내가 찍은 그녀는 최고의 슈퍼스타에 이어 나름 백치미. 역시 백치는 별로지만 백치미는 좋은 것인가 보다.
근데 Louis Garrel은 루이 가렐인가 루이스 가렐인가. 프랑스어에 대해 유일하게 배운 게 마지막 자음은 발음하지 않는다는 건데, 네이버에도 다음에도 모두 루이스 가렐이라고 되어 있네. 물론 제대로 발음하자면 Garrel도 가렐은 아닐 테지만..

+ 재니스 조플린 노래가 두 곡이나 나와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당연히 ROCK 생각이 났다. 있기만 했다면 오늘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가서 간만에 재니스 조플린 노래를 신청하고 맥주를 마시며 다시 한번 영화 생각을 했을텐데. 가고 싶다 ㅠ.ㅠ

+ 영화를 보기 전에 자세한 정보를 읽지 않는 편인데, 얼마 전 인사이드 르윈 같은 경우는 어린 밥 딜런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서 정보 좀 읽고 볼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오늘은 안 읽길 잘했다는 생각.
‘혹자들은 68혁명이 실패한 혁명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68년 이후로 모든 것은 변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당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몽상가들>이 그들에게 음악 한 대목을 들려주는 것처럼 혹은 햇살 한 줄기를 비춰주는 것처럼 68혁명이 품었던 희망의 힘을 전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는 감독의 말을 미리 읽고서 영화를 봤다면, 오늘만큼 조마조마하며 보진 못했을 테니. 


덧글

  • 2014/02/12 14:4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편식 2014/02/12 16:37 #

    지금까지 ㅇㅇ님과 나누었던 얘기들로 봐서는 ㅇㅇ님도 많이 좋아하실 만한 영화인 것 같은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영화 보고 나서 리뷰들 찾아봤는데 온통 에바 그린 너무 예쁘다 아니면 파격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엔딩에 대해서도 저와 같은 생각은 찾기 힘들고.. 오랜만에 나이 먹고 봐서 다행이다 싶은 영화였습니다 ^^
    저도 그래요. 같은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 영화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저는 좋은지 싫은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런 얘기들을 듣는 게 더 공감되고 재미있더라구요. 가끔은 몰라도 대부분 혼자서 영화를 봐야만 하는 상황은 그래서 저도 참 싫은데, 아마 그래서 얼음집에다 이렇게 적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ㅇㅇ님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운좋게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지만, 만약 그러지 못하더라도 혼자 생각만 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스스로하고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거든요. 나중에 다시 보면 예전의 나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요ㅋ
    앗 저도 사실 그 드라마 은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저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은 조금만 차이 나도 정말 안 좋아하는 편이라(여자들의 판타지건 남자들의 판타지건 저는 판타지는 정말 싫어요;;;) 그렇게 엄청 차이 나는 커플은 정말 좋아할래야 할 수가 없는데 제가 워낙 그 또래 배우 중 유아인을 가장 좋아해서요 -_-;; 안판석 피디도 mbc때부터 정이 든 편이고.. 그래서 내용은 정말 안 땡기지만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제 기사 뜬 걸 보니 스틸들이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꽤 맘에 들더라구요. 특히 유아인이 오랜만에 소년같은 이미지로 나오는 것 같아서 갑자기 마구 기대되고 있는 중입니다 ^^;; jtbc는 양심상 못 보겠고 다른 데서 재방할 때 봐 보려구요ㅋ ㅇㅇ님도 관심 갖고 계셨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ㅋㅋ
  • 2014/02/13 12:2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편식 2014/02/13 15:04 #

    앗 그러셨군요 어쩐지.. ㅇㅇ님도 분명 관심 가지실 만한 영화인 것 같았거든요 ^^
    아 온에어가 있었군요ㅋ 저도 예전에 일본에 있을 때는 온에어를 애용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워낙 컴퓨터와 맨날 씨름해야 하다 보니 이젠 웬만하면 티비나 영화는 컴퓨터로는 잘 안 보거든요ㅋ 뉴스는 티비에서 보여 주는 뉴스만 봐야 되는 게 싫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걸 좋아하구요. 이래저래 참 귀찮은 게 많아진 시절이네요. 이런 거 신경 안 써도 됐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또래 배우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소년 모습을 살짝씩밖에 못 봤다는 말씀이 딱이네요ㅋㅋ 저두 별그대는 여기저기서 너무 재방을 많이 해서 피해가기도 힘든데도 불구하고 전혀 흥미를 못 느끼겠더라구요. 일단 배우 둘다 관심 없는 게 제일 크고 스토리도 그런 스토리 별로 안 좋아하구요.. 그래서 표절 관련 기사도 제목만 보고 관심 없어서 안 봤었는데 강경옥 작가님이었던 거군요? 만화 안 본 지 너무 오래됐지만 예전엔 재미있게 읽은 게 몇편 있었던 것 같은데.. 무튼 저두 그래서 요즘은 드라마 보는 게 하나도 없어요. 유일하게 기다리는 게 어쩌다 보니 밀회가 되어 버렸는데 시작하면 또 ㅇㅇ님과 얘기 나눌 수 있겠네요. 기대됩니다 ^^
    요즘 일 때문에 티비를 평소보다 잘 안 켜두는 데다가 원래도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아아 저는 정말 이래저래 편식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즐기는 게 많으면 그만큼 재미있는 일도 많을텐데ㅜㅜ) 동계올림픽은 하나도 못 봤는데 아무래도 연애를 하면 더 힘도 나고 예뻐지고 하지 않을까요ㅋ 저는 끈기가 정말 부족한 편이라 쉬지 않고 연습하는 운동선수들 보면 항상 참 존경스러운 것 같아요. 김연아 선수를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는 거라고 대답하는 걸 보고 참 많이 공감했었다는요.
    이런 컨디션이 그러시군요 >.< 몸 따뜻하게 하고 잘 쉬시구요 입맛 도는 상큼하고 맛있는 거 많이 드셔요. 기운 내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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