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

자살은 진화 이론이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생명이 목표하는 모든 일의 대전제가 생존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은 진화를 관장하는 생존 도그마에 완벽하게 어긋난다. 진화심리학자인 데니스 데 카탄사로는 개체로서의 번식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을 때 유전자를 공유하는 부양 친족에게 생존 자원을 몰아주는 옵션이 자살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서에 '섹스할 기회가 없어서'라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죽어서도 수치스러울 만큼 엄청난 고백이다. 무의식에 박아둬야만 한다. 카탄사로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 충동과 생활 변수의 상관관계는 지난달의 섹스 빈도, 성공적인 이성관계, 평생의 섹스 빈도, 안정적인 이성관계, 지난해의 섹스 빈도, 자녀 수 순서였다고 한다. 이 상관성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생식 잠재력이 낮은 사람들, 친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람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 사이에서 높게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자살이 생식 및 양육 능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자살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친족에게 기회를 양보하기 위해 사라지는 것, 말하자면 아서 밀러의 희곡인 <세일즈맨의 죽음>과 같은 것이다. 자살에도 목적이 있다는 연구 결론은 다소 비정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인간의 행동조차 비록 그것이 너무나 끔찍한 결정일지라도, 단지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라 선량하고 이타적인 의지에 바탕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최소한의 위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씨네21 2015년5월26일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타적 유전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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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씨네21 보다가 발견한 글.
목적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덧글

  • .... 2015/06/10 04:11 # 삭제 답글

    섹스기회나 빈도 등은 소득 및 자산과 밀접히 관련이 있을것같은데 그 변수는 통제했는지 의문이 드네요.. 번식능력이 부족해서 자살하는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및 기타 압박으로 자살하는걸수도 있고 이쪽이 더 일반적인 설명이니까요. 물론 진화심리학측에서야 경제적 능력 부족이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도 결국은 번식과 양육능력이 부족 때문이다!!라고 주장할수도 있고 그게 꼭 틀린 말이라는건 아닌데, 대체 어떤 경험적 근거를 들어서 다른 수많은 대안적 설명을 기각하고 진화심리학적 설명의 우월성을 주장하겠다는건지 의아하긴 합니다.
  • 편식 2015/06/10 10:11 #

    네 저도 그게 궁금해서 데니스 데 카탄사로 이름으로 검색해 봤더니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 중에는 여러 학설을 소개하는 진화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소개를 한 것 같은데 책을 직접 보지 않는 한 저렇게 정리하는 게 맞을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당연히 경제력은 전제가 되어야 하겠죠. 그치만 왠지 경제력과 무관하게 성생활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자살 충동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원시인 같은 생각이 이 글을 보니 들기도 하네요ㅋ
  • 2015/06/10 14: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10 18: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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