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중단편집(2000, 열린책들)

「아, 나스쩬까, 나스쩬까! 당신은 아십니까,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이 나를 나 자신과 화해시켜 주실지? 그리고 나는 이제 예전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으리란 걸 아십니까? 어쩌면 나는 이제부터 이런 삶은 범죄이자 죄악이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 범죄와 죄악을 저질렀다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괴로워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아십니까? 내가 무언가 과장을 한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절대 그런 생각은 마십시오. 나스쩬까, 내게는 가끔 우수, 그런 우수의 순간이 닥쳐오거든요……. 그런 순간이면 이제 나는 정상적인 삶을 시작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하고 현실적인 것에 대한 모든 감각과 모든 요령을 상실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스스로를 저주합니다. 왜냐하면 환상의 밤은 지나고 내게 이미 무시무시한 각성의 시간이 닥쳐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삶의 회오리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북적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현실에서 사는 모습이 보이고 들립니다. 분명히 보입니다. 그들의 삶은 주문된 삶, 꿈처럼 환영처럼 날아가 버리는 삶이 아니라는 것, 그들의 삶은 영원히 갱신되고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것, 단 한 시간도 다른 한 시간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이. 반면에 그림자와 이상의 노예, 갑자기 태양을 덮고 현실적인 뻬쩨르부르그의 심장을 우수로 짓누르는 맨 처음 먹구름의 노예인 비겁한 환상은 얼마나 우울하고 또 범속할 정도로 단조로운지 모릅니다. 뻬쩨르부르그의 심장도 자신의 태양을 소중히 여깁니다. 하지만 우수 속에 무슨 환상이 있겠습니까! 환상도 마침내 지쳐 버린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 <지칠 줄 모르는> 환상도 영원한 긴장 속에서 쇠약해집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고 자신이 과거에 품었던 이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마련이니까요. 그 이상들은 산산조각 부서져 가루가 됩니다. 만일 다른 삶이 없다면, 그 부스러기를 가지고 다시 삶을 꾸며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은 뭔가 다른 것을 원하고 또 요구합니다! 그래서 몽상가는 부질없이 마치 재 속을 헤집듯 자신의 낡은 몽상을 뒤적거립니다. 재 속에서 무슨 불씨라도 하나 찾아내 호호 불어 가지고는 다시 붙은 불로 차가워진 심장을 녹여 보려는 거지요. 그리고 과거에 그토록 다정했던 모든 것, 영혼을 감동시켰던 모든 것, 피를 끓게 하고 눈물을 샘솟게 하던, 그리고 그토록 찬란하게 그를 기만했던 모든 것을 가슴 속에 다시 살아나게 하려는 거죠! 나스쩬까, 이제 내가 어디까지 갔는지 아시겠죠? 나는 내 감각의 기념일을 지내야 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과거에 그토록 다정했던, 그러나 사실은 한번도 존재했던 적이 없는 것들의 1주기 말입니다. 이 기념식은 어리석고 허황된 몽상을 따라 거행됩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는 이 어리석은 몽상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무엇으로도 그것들을 쫓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몽상도 사실 목숨이 질긴 편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지금 언젠가 과거에 나름대로 행복을 느꼈던 장소들을 기억해 내곤 일정한 시간에 그곳을 방문하길 좋아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과거에 맞추어 현재를 꾸미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마치 그림자처럼 까닭없이, 목적도 없이 우울하고 침울하게 뻬쩨르부르그의 골목골목, 거리거리를 싸돌아다닙니다. 회상이란 참 대단한 거죠! 이를테면 이런 것이 생각납니다. 바로 1년 전, 바로 이때,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지금처럼 우울하게 지금처럼 고독하게 이 보도를 걷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또 이런 것도 생각납니다. 옛날에도 몽상은 서글픈 것이었고 옛날이라고 해서 뭐 더 나은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는 게 왠지 좀 더 홀가분하고 좀 더 평화로웠다는 생각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 내게 달라붙어 있는 이 검은 상념이 없었으니까요. 밤이고 낮이고 한시도 내게 평화를 주지 않는 이 암울하고 위협적인 양심의 가책이 그땐 없었으니까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 너의 꿈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런 다음 고개를 휘휘 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세월은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가! 그리고 또다시 묻습니다. 그래, 너는 이 세월 동안 무엇을 했는가? 너의 황금 같은 세월을 어디다 묻어 버렸는가? 살아 있었던 거냐 아니냐?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조심하라고, 세상은 점점 냉혹해지고 있어. 몇 년 더 지나면 또 우울한 고독이 뒤따를 거야. 목발을 짚고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는 노년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그 뒤에는 우수와 권태가 뒤따를 거야. 너의 환상 세계도 빛을 잃겠지, 그리고 꿈은 시들어 낙엽처럼 떨어지고 마침내 사라져 버리겠지……. 오, 나스쩬까! 혼자, 전적으로 혼자 남는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겠지요. 심지어 아쉬워할 것조차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잃어버린 모든 것도, 지금의 모든 것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어리석고 동그란 원, 그저 한낱 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나스쩬까,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祭臺)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서 단 한 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저 버리게 할 것 같은가……. 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백야: 감상적 소설, 어느 몽상가의 회상 중에서>(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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