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너무 많은 사람, 몹시 나쁜 공기, 엄청 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물론 교정의 초목과 잘 식은 봄밤 공기는 가슴을 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나는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라는 식물의 방어 물질에 사랑의 묘약이 섞여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학기의 그 많은 청춘이 그렇게 동시에 상기된 채 헤롱댈 수는 없는 일이다. 번식기의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는 은근하며 서툴렀고 노골적인 동시에 싱싱했다. 나는 스무 살을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게 좋았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정색하고 말하는 바람에 술자리를 썰렁하게 만들어버렸던 것은.
발인은 내일 새벽이었다. 막차를 타지 않았으니 나는 아마 내일 거기 없을 터였다. 그 아이, 잠수를 참 잘했는데. 물속 깊이 사라졌다 어느새 저쪽에서 싱싱한 물고기처럼 튀어 오른 병만의 매끈한 몸이 떠올랐다. 우리 모두 그 애가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하다 어느 순간 몸을 털며 짠― 하고 나타나면 감탄하곤 했는데. 한쪽 팔로 이마를 짚었다. 천장에선 여전히 형광등 불빛이 불안하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내가 물속에서 본 빛처럼 사라질 듯 말 듯 아득하게 가물댔다. 길게 손 뻗으면 정말 잡힐 것만 같은 자리에 있던 밝고 투명한 막 같았다. 갑자기 오른팔 어디 께가 몹시 아려왔다. 가만 보니 팔뚝 안쪽에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아까 나를 붙든 선배가 남긴 자국인 듯했다. 팔뚝 위로 선배 손의 완력과 축축한 여운이 느껴졌다. 환한 봄날 한가운데에 어두운 옷을 입고 서 있던 내게 '이 여자의 생활이 보여서 좋아'라고 말하던 선배의 아름다운 옆얼굴도...... 그러자 고향의 병만이가 떠올랐다. 살면서 내가 가장 세게 잡은 누군가의 팔뚝이...... 갑자기 목울대로 확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사막에서 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치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손톱으로 그렇게 눌리면 아팠을 텐데......' '많이 아팠을 텐데......' 하고. 천장 위 형광등은 여전히 꺼질 듯 말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직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나를, 여름옷을 주렁주렁 매단 2단 옷걸이가 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굽어보고 있었다.
-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2012)
아버지는 죽기 전에도 체조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아버지처럼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야 했던 사람들과 교대로 크레인에 올라간 모양인데, 회사에서 전기를 끊어 밤이 되면 무척 어두웠단다. 언제 강제 진압이 있을지 몰라 쪽잠을 잘 수밖에 없는데다, 자정 이후에는 체온이 급속도로 떨어져 눈이 저절로 뜨였다고 했다. 초여름이라도, 사방이 탁 트인 타워크레인 위에서 맞는 바람은 제법 쌀쌀했을 것이다. 그러니 동이 트고 몸이 더워질 때까지 맨손체조를 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다. 발을 헛디딜지 몰라 조심조심하면서, 갈증이 날 땐 공장 화장실에서 떠 온 물을 조금씩 마셔가면서, 선두에 선 사람도, 주요 간부도 아니었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싶어...... 다른 건 잘 모르겠다. 다만 아무도 없는 고공 크레인 위에서 핫둘, 핫둘, 팔벌려뛰기를 하셨을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등배운동을 하고, 노젓기를 하고, 토끼뜀을 뛰었을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몹시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는 복잡하게 얽힌 뿌리 사이에 단단히 붙박여 있었다.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어머니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배를 버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오래전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발을 구르고 팔을 휘젓고 숨을 고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선가 '그래, 그렇지'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눈과 입속으로 흙탕물이 계속 들어왔다. 숨이 차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를 쫓아갔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무는 다가오다, 물러서다,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곤 결국 빠른 속도로 내 곁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엄마!" 외쳤다. 시뻘게진 뺨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물살을 따라 애드벌룬처럼 둥실둥실 먼 곳으로 흘러갔다. 녹색 테이프로 둘둘 감긴 얼굴이 이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정자나무는 걱정 말라는 듯, 마치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신처럼 단단한 뿌리로 어머니를 감싸안은 채 저 끝으로 사라졌다.
문득, 아버지가 나를 이리로 보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둥지둥 비닐을 뜯어 생면을 입안에 우겨넣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맛이었다. 이번에는 사이다 병뚜껑을 따 한 모금 마셔봤다. 꿀꺽꿀꺽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액체가 시원하고 알싸했다. 나는 좀더 적극적으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컴컴한 입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살짝 매캐한 눈물이 났다. 어둠 한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몸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그러자 문득, 아버지의 보호안경 위로 비쳤을 용접 불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평생 마주한 불빛, 불빛. 그리고 내게 다른 빛을 보여주려 한 아버지의 마음도. 오래전 그날, 우리 부자는 사각팬티를 입은 채 강둑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내 생일 선물로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앞장선 날이었다. 먼저 시범을 보인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팔의 각도가 어떻고 호흡이 어떻고 한참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냥 네 맘대로 해보라 하셨다. 네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라고.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껴보라고 했다. 나는 물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콧구멍으로 물이 들어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 앞에서 뭔가 자꾸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세를 잡아주며 조금씩 깊은 데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와 노닥거리고 실랑이 벌이는 사이, 어느 순간 놀랍게도 나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 개헤엄 치듯 우스꽝스럽게 버둥거리는 거였지만, 그건 무척 이상하고 편안하며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디선가 '그래, 그렇게'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후,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보며 이번에는 잠수를 해보라고 했다. 대신 물 밖에 나왔을 땐 반드시 하늘을 봐야 한다고. 그 정도야 뭐.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여유를 부리며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온몸에 힘을 빼고 물에 떠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여름 강물의 속살은 차고 싶었다. 부드럽고 물컹하니 아득하며 편안했다. 생경한 듯 잘 아는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 세상의 그 어떤 소음과도 차단돼 짧은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 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물속에 있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고 어느 순간, 숨을 참지 못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머리 위로 수천개의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물속에 있었을 때보다 숨이 더 막혔다. 정말이지 그건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근사한 거였다. 나는 사이다를 들이켜며, 이내 사라지고 없는 불꽃 맛을 음미했다. 그러곤 나직하게 중얼댔다. 여기에선 어쩐지 그 유성우 같은 맛이 난다고.
- 김애란 <물속 골리앗>(2012)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정색하고 말하는 바람에 술자리를 썰렁하게 만들어버렸던 것은.
발인은 내일 새벽이었다. 막차를 타지 않았으니 나는 아마 내일 거기 없을 터였다. 그 아이, 잠수를 참 잘했는데. 물속 깊이 사라졌다 어느새 저쪽에서 싱싱한 물고기처럼 튀어 오른 병만의 매끈한 몸이 떠올랐다. 우리 모두 그 애가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하다 어느 순간 몸을 털며 짠― 하고 나타나면 감탄하곤 했는데. 한쪽 팔로 이마를 짚었다. 천장에선 여전히 형광등 불빛이 불안하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내가 물속에서 본 빛처럼 사라질 듯 말 듯 아득하게 가물댔다. 길게 손 뻗으면 정말 잡힐 것만 같은 자리에 있던 밝고 투명한 막 같았다. 갑자기 오른팔 어디 께가 몹시 아려왔다. 가만 보니 팔뚝 안쪽에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아까 나를 붙든 선배가 남긴 자국인 듯했다. 팔뚝 위로 선배 손의 완력과 축축한 여운이 느껴졌다. 환한 봄날 한가운데에 어두운 옷을 입고 서 있던 내게 '이 여자의 생활이 보여서 좋아'라고 말하던 선배의 아름다운 옆얼굴도...... 그러자 고향의 병만이가 떠올랐다. 살면서 내가 가장 세게 잡은 누군가의 팔뚝이...... 갑자기 목울대로 확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사막에서 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치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손톱으로 그렇게 눌리면 아팠을 텐데......' '많이 아팠을 텐데......' 하고. 천장 위 형광등은 여전히 꺼질 듯 말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직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나를, 여름옷을 주렁주렁 매단 2단 옷걸이가 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굽어보고 있었다.
-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2012)
아버지는 죽기 전에도 체조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아버지처럼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야 했던 사람들과 교대로 크레인에 올라간 모양인데, 회사에서 전기를 끊어 밤이 되면 무척 어두웠단다. 언제 강제 진압이 있을지 몰라 쪽잠을 잘 수밖에 없는데다, 자정 이후에는 체온이 급속도로 떨어져 눈이 저절로 뜨였다고 했다. 초여름이라도, 사방이 탁 트인 타워크레인 위에서 맞는 바람은 제법 쌀쌀했을 것이다. 그러니 동이 트고 몸이 더워질 때까지 맨손체조를 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다. 발을 헛디딜지 몰라 조심조심하면서, 갈증이 날 땐 공장 화장실에서 떠 온 물을 조금씩 마셔가면서, 선두에 선 사람도, 주요 간부도 아니었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싶어...... 다른 건 잘 모르겠다. 다만 아무도 없는 고공 크레인 위에서 핫둘, 핫둘, 팔벌려뛰기를 하셨을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등배운동을 하고, 노젓기를 하고, 토끼뜀을 뛰었을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몹시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는 복잡하게 얽힌 뿌리 사이에 단단히 붙박여 있었다.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어머니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배를 버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오래전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발을 구르고 팔을 휘젓고 숨을 고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선가 '그래, 그렇지'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눈과 입속으로 흙탕물이 계속 들어왔다. 숨이 차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를 쫓아갔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무는 다가오다, 물러서다,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곤 결국 빠른 속도로 내 곁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엄마!" 외쳤다. 시뻘게진 뺨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물살을 따라 애드벌룬처럼 둥실둥실 먼 곳으로 흘러갔다. 녹색 테이프로 둘둘 감긴 얼굴이 이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정자나무는 걱정 말라는 듯, 마치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신처럼 단단한 뿌리로 어머니를 감싸안은 채 저 끝으로 사라졌다.
문득, 아버지가 나를 이리로 보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둥지둥 비닐을 뜯어 생면을 입안에 우겨넣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맛이었다. 이번에는 사이다 병뚜껑을 따 한 모금 마셔봤다. 꿀꺽꿀꺽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액체가 시원하고 알싸했다. 나는 좀더 적극적으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컴컴한 입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살짝 매캐한 눈물이 났다. 어둠 한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몸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그러자 문득, 아버지의 보호안경 위로 비쳤을 용접 불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평생 마주한 불빛, 불빛. 그리고 내게 다른 빛을 보여주려 한 아버지의 마음도. 오래전 그날, 우리 부자는 사각팬티를 입은 채 강둑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내 생일 선물로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앞장선 날이었다. 먼저 시범을 보인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팔의 각도가 어떻고 호흡이 어떻고 한참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냥 네 맘대로 해보라 하셨다. 네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라고.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껴보라고 했다. 나는 물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콧구멍으로 물이 들어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 앞에서 뭔가 자꾸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세를 잡아주며 조금씩 깊은 데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와 노닥거리고 실랑이 벌이는 사이, 어느 순간 놀랍게도 나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 개헤엄 치듯 우스꽝스럽게 버둥거리는 거였지만, 그건 무척 이상하고 편안하며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디선가 '그래, 그렇게'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후,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보며 이번에는 잠수를 해보라고 했다. 대신 물 밖에 나왔을 땐 반드시 하늘을 봐야 한다고. 그 정도야 뭐.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여유를 부리며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온몸에 힘을 빼고 물에 떠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여름 강물의 속살은 차고 싶었다. 부드럽고 물컹하니 아득하며 편안했다. 생경한 듯 잘 아는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 세상의 그 어떤 소음과도 차단돼 짧은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 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물속에 있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고 어느 순간, 숨을 참지 못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머리 위로 수천개의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물속에 있었을 때보다 숨이 더 막혔다. 정말이지 그건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근사한 거였다. 나는 사이다를 들이켜며, 이내 사라지고 없는 불꽃 맛을 음미했다. 그러곤 나직하게 중얼댔다. 여기에선 어쩐지 그 유성우 같은 맛이 난다고.
- 김애란 <물속 골리앗>(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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