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식민지 영화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글

이것이 하나의 경향인지 아니면 시대정신인지 혹은 일시적인 유행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부정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일제 강점기 문화에로 인문학은 관심을 돌렸다. 좋은 일이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단절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적 단층을 언젠가 역사의 담론이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담론들은 단층을 역사화하는 대신 낭만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메이지유신이 가져온 일본의 근대화는 종종 식민지 경성에 믿을 수 없는 문화적 순간을 마련하였다. 나는 1930년대 파블로 카잘스와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로 이루어진 카잘스 트리오가 경성을 방문했었다는 기사를 읽고 어떤 쇼크를 받았다. 경성의 '모던 뽀이'들과 '모던 껄'들은 전설적인 카잘스 트리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를 가졌었다. 어쩔 수 없는 탄식. 눈앞에서 티보의 저 신비로운 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니, 아니 코르토의 전성기의 미스 터치의 건반을 직접 볼 수 있었다니, 그리고 카잘스의 춤추는 것만 같은 첼로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소 역겨운 표현이지만) 식민지 신민들의 과분한 기쁨. (...) 물론 그걸 들으러 다닌 '뽀이'들과 '껄'들은 친일분자의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이미 역사의 저 너머로 스러져버린 조선의 정체성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며, 풍문으로 전해온 청산리 눈밭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6년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다음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소설가 이광수가 했던 유명한 한 마디.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은 몰랐다"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 말은 수없는 변주의 버전으로 식민지 강점하를 배경으로 한 해방 '이후' 영화에서 마치 알리바이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나는 먼저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36년을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은 덧붙이고 싶다. 여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어쩌면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한국영화사에는 일제 강점기 36년을 다룬 영화들의 두 시기가 있다. 하나는 1960년대 말에서 1979년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이다. 나는 앞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전기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고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포스트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겠다. 그 둘의 차이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 한 쪽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시대와 직접 맞대면하고 살아보았고 다른 한 쪽은 양쪽 모두 그 시대를 교육을 통해서 학습했다는 사실이다. (...) 게다가 더딘 근대의 풍경은 아직까지 일제 강점하의 생활을 재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 말뜻은 일제 강점하의 이미지와 말이 여전히 일상 안에 머물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1970년대에 영화를 만들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 팀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얼마든지 자신들이 살았던 시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에서 기억은 지속이라는 흐름 안에서 머물고 있다고 일깨워준 베르그송의 조언을 잊으면 안 된다. 순수 지각 없이 표상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 없이 세워진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의 향수들이 그리워하는 순수 지각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여기에 좀 더 복잡한 역사적 논점이 기다리고 있다. 1980년을 경계로 갑작스러운 부동산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 흔적을 폭력적으로 지워나갔다. 여기에 역사의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인 말소 따위는 없다. 오직 자본주의 경제학의 논리만으로 한국사회의 풍경을 바꿔나갔다. 그런 다음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일제 강점하를 오로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부채 위에 세워진 채 정책적으로 편향되고 부정확한) 자료와 학교 제도의 교육을 통해서만 학습한 세대였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는 뜻이다.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의 풍경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기호이며 사진을 경유하여 재현된 이차 자료들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경험이 매개되어 있지 않은 지식의 한계 속에서의 인공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더도 덜도 아닌 <아가씨>.

<왜 그랬던가>는 그때 만들어진 거의 하나의 제도적인 장르라고 불릴 만한 일제 강점기 독립군 영화 중의 한 편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이 영화들은 인기가 없었다.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만들어졌다. 박정희 제3공화국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두 가지 이념을 들고 나왔는데 하나가 (물론) 적대적인 반공주의였으며 다른 하나가 맹목적인 민족주의였다. (...)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힘세고 나쁜 일본, 힘없는 착한 조선으로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이분화 되었다. 그런 다음 기괴할 정도로 이 과정에서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수사로 망설임 없이 가혹한 고문을 개입시켰으며 종종 이 장면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박당한 채로 전시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면서 변태적인 관음적 시선의 에로틱한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소름 끼치게 만드는 순간은 유교를 내세운 검열이 과도할 정도로 성적인 묘사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가위질을 하다가도 일제 강점하의 고문장면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해질 때이다. 이를테면 <아가씨>의 관음적 마조히즘의 전시와 <밀정>에서 잡혀온 다른 '남성' 독립 운동가들을 제쳐놓고 유일한 여자인 연계순을 과도할 정도로 가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간극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 정성일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 왜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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